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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ISM · 2024 · 《타자와 무한》 프로그램

심연(深淵)으로 뛰어드는 자

작곡가 정세훈 작가론

원유선 (음악학자)

“말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말하려 할 때 음악적 언어나 꽃의 언어를 사용한다.

꽃의 세계나 음악의 세계는 그토록 성스럽기에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기꺼이 활을 켜거나 자연으로 향하게 된다.

이 두 가지는 신성과 무한성의 상징들이다.”

로베르트 슈만(R. Schumann, 1810-1856)

작곡가 정세훈의 음악을 들여다보면서 곧바로 떠오른 것은 슈만이 음악적 이상향으로 제시했던 ‘포에지’(Poesie, 시적인 것)였다. 슈만은 낭만성을 표현한 작곡가로 그려지지만, 사실상 그 당시의 사회를 누구보다도 뾰족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사람이었다. 19세기 중반은 프랑스 혁명으로 촉발된 일련의 혁명들이 실패로 돌아가고 산업혁명의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나던 때였다. 인간이 이성으로 유토피아에 도달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사회가 건조하고 피폐해지자 지식인들은 회의에 빠졌고 음지로 숨어들었다. 음악계는 음악계대로 문제가 많았다. 비르투오소들이 득세하면서 음악은 돈벌이로 전락하였고 예술성보다는 화려한 연주 기술을 구경하고자 관객들이 몰려들었다.

슈만은 표현의 기술이 음악의 본질을 압도하는 상황을 비판하면서, 음악에서 추구해야 하는 것은 ‘시적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시적인 것은 기교를 강조하기보다는, 고귀하고 비밀스러운 영혼의 상태를 표현하며 청중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시적인 음악은 ‘고정된 도식으로부터 벗어나 이상적인 세계로 이끄는 예술’이다. 2024년 현재는 슈만이 살던 1830년대의 사회와도 공명하는 지점이 있다. 동시대 역시 예술보다는 기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시대, 모든 것이 숫자, 효율, 이율로 평가 받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속도와 기술이 지배하는 현 시대에, 작곡가 정세훈의 음악은 ‘시적인 것’을 환기시킨다. 그의 음악은 표면적으로는 서정성을 띠고 있지만, 그 속에는 ‘자아’와 ‘타자’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정신적 고찰이 있다. 여기서 타자는 단순히 외부나 타인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함께 관계하면서 자아의 지평을 넓혀주는 것이다. 자아는 타자를 통해 고정되고 익숙한 패턴으로부터 벗어나 새롭고 불안정한 세계로 뛰어들게 된다. 슈만이 모순적인 소리를 통해 무한한 정신세계(Das Unendliche)를 표현하려 했듯이, 정세훈의 음악적 탐구는 매끄럽고 편안한 것을 숭상하는 시대에 ‘예측할 수 없는 무한으로 기꺼이 뛰어드는 도전’으로 이어진다.

♯ 상처 받기 쉬운 소리들

작곡가 정세훈은 지나가는 것들, 깨지기 쉬운 것들, 부서지기 쉬운 것들, 곧 죽는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는 취약한 소리에서 존재의 가치를 찾으며 그것들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깊이 고려한다. 따라서 그는 화려하고 효과가 뚜렷하게 담보되는 소리보다는, 주름지고, 균열되고, 불완전한 소리, 병약한 소리 등 평범하지 않은 소리에 귀 기울인다.

아도르노(Th. W. Adorno)는 일찍이 동일화되고 일반화된 사유로부터 벗어날 때라야 비로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예술작품이 이러한 동일화된 개념적 사유에 대항하여 개별적인 것, 미세한 것, 특수한 것, 개인적인 것을 드러낸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사고는 정세훈의 음악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음악에서 어느 하나의 음색과 다른 음색 사이에 드러나지 않는 엄청나게 많은 스펙트럼의 색깔들과 소음이 있으며, 이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 소중한 경험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아도르노의 표현을 빌자면, “전체성과 일반성으로부터 오염되지 않은 독자성”을 정세훈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불안정하고 유약한 소리에도 존재의 가치를 탐색하며 다른 소리의 만남으로 이뤄진 미묘한 변화와 예기치 못한 소리의 확장 가능성을 끊임없이 실험한다. 그 변화의 폭은 좁고 느린 속도로 진행해도 예리하게 나타나며, 우연적 소리와의 교차적 관계를 통해 음 자체가 갖는 잠재적인 가능성이 드러나게 된다.

대표적으로 현악 4중주를 위한 <흰색 레이스 웨딩 드레스>(2020)는 고정하거나 조절하기 어려운 소리들을 모아서 만들어낸 음악이다. 정세훈은 단단하고 내구성 있는 천과 달리, 구멍이 뚫린 불완전한 무늬가 눈과 마음을 잡아끄는 점에 착안하여, 불규칙하거나 불완전한 소리들을 가지고 음악적 흐름들을 만들어냈다. 불규칙한 타이밍이나 소음, 금방이라도 소멸하거나 깨져버릴 것 같은 고음의 하모닉스가 위태롭게 작품의 전체를 이룬다. 정세훈의 표현에 따르면 “[불완전한] 소리 무늬의 조합 전체는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며, 소리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존재 양식에 의문을 던진다. 나는 타자와 섞여 있고, 즉 타자들은 나를 이룬다.”

그런가 하면 16성부 무반주 혼성합창곡 <Blumen, fleurs>(2015)에서는 ‘들리지 않는 음에 대한 갈망’이 나타난다. 작품의 주요한 소재는 스펙트럴(spectral) 음악에서 나타난 역배음렬로, “역배음렬에서 가장 높은 기음인 제1배음만 빼고 나머지 소리들을 지속했을 때 그 기음이 들릴 수 있을까?”에 대한 음향적 호기심이 작품의 출발점이 되었다. 즉 역배음렬의 음향적 가능성을 찾으려는 개인적 궁금증에서 시작되어 인성의 가능성을 실험하고자 한 것이다. 배음들의 화성 변화는 매우 느리게 나타나면서, 비슷한 것들 사이에서 조금씩 차이를 만들어나간다. 이러한 음악적 실험들의 근저에는 개별적 주체인 인간조차도 항상 동일한 존재인 것 같지만, 사실상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는 것,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고, 나는 어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존재 양식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있다.

♯ 노스탤지어, 판타지, 그리고 노스탤지어

정세훈이 탐구해온 여리고 유약한 소리들은 노스탤지어의 세계를 향한다. 노스탤지어란 집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노스토스’(nostos)와 통증을 의미하는 ‘알고스’(algos)를 합쳐 만든 단어로,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나 “과거의 어떤 시기에 대한 애석한 애착이나 감정적인 갈망”을 일컫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정세훈의 음악에서 표현하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경험한 적 없는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2021년 발표한 <낯선 나라들로부터>(Von fremden Ländern)에서는 직접 가보거나 경험한 것이 아님에도 먼 곳에 대한 어렴풋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다. 리코더, 타악기, 바이올린, 첼로와 같은 어쿠스틱 악기와 함께, 전자 피아노와 비디오, 스크린과 4개의 스피커 같은 전자 장치가 사용되었다. 또한 1970년대 파독 간호사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장보윤 작가의 영상이 음악과 함께 상영된다.

무대에서 구슬픈 리코더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스크린 속 영상에서는 독일인 여성이 파독 간호사의 회상이 담긴 한국어 편지를 낭독한다. 여기에 빛바랜 옛 사진, 달리는 차에서 보이는 독일의 길거리 영상, 나다니엘 호손의 소설 『목사의 검은 베일』에 등장하는 의미심장한 구절 등이 중첩되어 등장한다.

“새벽마다 들리는 환자들의 호송 소리는 아직도 견디기 어려워요”, “때로는 이 도시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알 수 없는 미움들이, 제 안으로 밀려 들어와요” “이것은 단지 이 세상의 베일일 뿐이지 (...)” 파독 간호사의 편지로 전해지는 타인의 기억과, 『목사의 검은 베일』 속 의미심장한 구절들이 자막으로 전달되면서 서로 다른 기억과 생각이 오버랩된다.

후반부에는 전자 효과를 입힌 소리들을 통해 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변형되고 왜곡되는 기억의 과정이 나타나고 있다. 거리의 소음과 종소리, 교통카드 단말기 소리가 수차례 번복되고 왜곡되는 가운데, 무대의 피아노, 첼로, 타악기 소리가 곳곳에 날카롭게 끼어들면서, 과거와 현재가 의식 속에서 뒤섞이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정세훈은 처음에는 새로운 공연 형식을 만들려는 요량으로 이 작품에 접근했다고 말한다. 연주회를 전시하고, 전시회를 연주하듯이, 관객이 자유롭게 걸으며 사방으로부터 들려오는 예술을 만들고 싶었다고. 그러나 <낯선 나라들로부터>는 객석에 가만히 앉아 집중해서 들을 때 오히려 그 진가를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몰입하는 의식 속에서는 과거와 현재, 이곳과 저곳을 자유롭게 떠돌아다닐 수 있으니 말이다.

파독 간호사의 기억과 장보윤 작가의 기억이 겹쳐지고, 여기에 작곡가 정세훈이 개인의 기억을 소리로 투영해낸다. 그리고 관객은 또 다시 본인의 기억과 상상을 개입시키며 ‘지나온 적 없는 시공간에 대한 생경한 노스탤지어’를 경험할 수 있다. 정세훈의 작품 제목이기도 한 “나와 너희, 나와 우리”(Ich und Ihr, Ich und Wir), 즉 내가 타자와 섞여 있고 타자가 나를 이룬다는 생각은 여기서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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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 과거와 현재의 중첩은 <소나기>(2012)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낯선 나라들로부터>가 기억으로 촉발되는 노스탤지어를 표현했다면, <소나기>에서는 한국 작가 황순원의 문학작품 『소나기』에 바탕을 둔 시적인 판타지를 구현한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정세훈이 주목한 것은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죽거든 저 입었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 묻어 달라고 (...).” 우연히 소나기를 맞아 목숨이 위태로워진 소녀는 소년을 만날 때 입었던 스웨터를 입힌 채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정세훈은 소녀의 유언이 ‘죽음 이후 도달할 세계와 현세의 과거를 연결하려는 시도’라고 해석하였고, 다른 차원의 두 세계를 연결 짓고자 했다. 전자음향은 현실에서 이어질 수 없는 두 세계의 만남을 주선하는 매개체이다. 미리 녹음된 악기 소리와 무대에서의 소리, 일상에서 들을 수 있는 걸음 소리와 악기 소리들이 결합되면서 과거와 현재, 가상과 현실이 동시에 울려 퍼진다.

이로부터 10년 뒤 발표된 <별>(2022) 역시 황순원의 소설 『별』에 나타나는 그리움의 정서가 창작의 출발점이 되었다. 주목할 점은 이 작품이 소설의 내러티브나 주인공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자아와 타자 및 우주의 시공간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어머니와 누이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별에 투영한다.

‘왜 주인공은 별에다가 감정을 투영했던 것일까?’ 정세훈은 스스로 답한다. ‘나의 중력이 공간을 구성하기에, 나의 에너지와 의지는 타자에게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타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와 너는 함께 중력과 공간을 구성하기에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우리는 심지어 별에도 소통을 시도한다.’

형이상학적인 판타지와 에너지를 표현하기 위해 전자음향의 사용은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이 곡에는 에너지의 흐름, 입자의 운동, 별들의 움직임 등이 표현된 이은희 작가의 영상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리코더, 플루트,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가 전자 음향과 결합되면서 줄거리와 소설적 장치뿐만 아니라 우주와 자아의 상호적 에너지를 표현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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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정세훈의 시선은 다시 노스탤지어를 향하고 있었다. 2023년 7월 29일 ‘프로젝트 앙상블 모프’ 정기연주회에서 정세훈은 <슈만 어린이 정경>(Schumann Kinderszenen)을 발표하였다. 슈만의 <어린이 정경>에 수록된 13곡을 편곡한 작품이었다: ‘낯선 나라와 사람들로부터’, ‘궁금한 이야기’, ‘술래잡기’, ‘부탁하는 아이’, ‘충분한 기쁨’, ‘중요한 이벤트’, ‘꿈’, ‘난롯가에서’, ‘목마 탄 기사’, ‘너무 심각한 듯’, ‘무섭게 하는 것’, ‘잠든 아이’, ‘시인이 말한다’.

일견 슈만의 명곡을 가볍게 편곡해서 발표한 것 같지만, 사실 <슈만 어린이 정경>은 정세훈의 음악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첫 번째, 소리적 측면에서다. 전작 <낯선 나라들로부터>처럼 음악은 리코더의 여리고 청순한 소리로 시작한다. 현대음악이 파괴적인 기법들로 가득하다는 세간의 통념과 달리, 정세훈의 음악은 보호본능을 일깨우는 취약한 소리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렇다고 연약한 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껏 낭만적 서정성에 젖어들 즈음, 유리 조각처럼 날카로운 소리들이 잔잔한 공기를 가른다. 급작스럽게 쑥 솟아오르는 고음의 리코더, 타악기의 씩씩하고 호쾌한 울림, 하모닉스로 조용히 일그러지는 음향 등이 보기 좋게 음악적 기대를 깨뜨려버린다.

두 번째는, 주제적 측면에서다. 이 글의 서두에서 필자는 정세훈의 음악이 개인적으로 슈만의 음악세계를 환기시킨다고 이야기했다. 본래 슈만은 <어린이 정경>에서 ‘동경’의 감정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전해진다. 현실에 대한 슈만의 불만과 비판은 어린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와 동화적 환상을 자극하였다. 슈만에 따르면 어린이는 완벽한 인간이며, 어린 시절은 타락한 현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파라다이스다. 마찬가지로, 필자에게는 때묻지 않은 순수한 서정성, 외부로부터 오는 문학적 영감, 그리하여 내부를 확장하려는 예술적 갈망이 정세훈의 음악을 관통하는 중요한 특징들로 읽힌다.

♯ 작곡가 정세훈, “무한을 예감하는 자”

“네가 가질 수 있는 가장 무거운 것을 심연에 던져버려라”

프리드리히 니체(F. W. Nietzsche, 1844-1900)

오늘 연주되는 작품 <Into the Blue>(2017/2024)에서 정세훈은 몹시도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끝없이 높이 올라간다면, 배에서 뛰어내려 풍덩 잠수한다면, 한 순간 우리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지 않을까?’ 유사한 문제의식이 <무한을 예감하는 자>(2024)에서도 발견된다. ‘죽음 이후나 탄생 전의 시간을 떠올리는 것은 가장 막막하고 두려운 것, 혹은 애써 회피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무한을 품은 사람은 매력적으로 보일까?’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죽음이나 무(無)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가 세계와 우리의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성찰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정세훈은 상상력과 인식을 뛰어넘는 무한을 동경하며 두려움을 극복한 채 의연히 서 있는 용감한 인간을 그려내고자 한다. 그러한 인간은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야기하듯이 “두려움을 알면서 두려움을 제압하는 자, 심연을 보지만 자긍심이 있는 자, 심연을 보지만 독수리의 눈으로 보는 자”이다.

한편 이러한 생각은 독일의 낭만주의 예술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의 그림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1818)를 상기시킨다. 그림에서는 가파른 바위 위에 지팡이를 짚은 남자가 바위 절벽에서 망망대해 같은 안개를 바라보는 중이다. 험준한 바위 밑의 세계는 사납고 거센 파도 같은 안개로 가득 차 있어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심을 준다. 그러나 고독해 보이는 남성의 뒷모습은 굳세고 결연한 의지로 차 있다. 요컨대 두려운 자연과 대면하는 모습은 ‘무한자를 향한 열망’을 보여주며 ‘숭고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정세훈은 이처럼 ‘무한’과 ‘숭고’의 낭만적 감수성과 공명하면서, <무한을 예감하는 자>에서 대편성의 앙상블을 사용하였다. 피아노와 함께, 플루트, 오보에, 바순, 호른, 트럼펫, 트럼본, 튜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퍼커션으로 구성된 대규모 앙상블이 무대에 등장하게 된다. 무한을 표현하기 위해 작곡가가 선택한 재료는 끝없이 자동으로 생성되는 음고열이다. 제2바이올린, 제2비올라, 제2첼로가 미분음(1/4)으로 조율된 소리를 연주하면서 음고는 더 쪼개지고 확대된다. 현악기와 우드블록, 관악기가 쉼 없이 움직이고, 피아노가 단2도 간격으로 구성된 불협화음을 간헐적으로 연주하면서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이후 짧은 음가들로 이뤄진 소리들이 전 파트로 분산되어 거대한 음향체를 이루고, 이따금 피아노가 비르투오소적 패시지를 연주한다. 그런가 하면, 묵직한 화성적 울림과 침묵이 교차로 나타나면서 무한 앞에 선 단독자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두려움에서 벗어나 어떻게 음악으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정세훈에 따르면, 그것은 ‘반복화된 패턴으로부터 저항’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예술음악에서 잘 만들어진 매끄럽고 정교한 구조물을 기대한다. 매끄러운 것은 상처를 입히지 않기 때문일 터이다. 철학자 한병철의 지적처럼 “매끄러운 것은 어떤 저항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좋아요, like를 추구하며 모든 부정성이 제거된다. 어떤 재앙도, 상처도, 깨어짐이나 갈라짐도, 심지어 봉합선도 없다”.

그러나 정세훈은 음악에서 “자연스럽고 단단한 구조물을 만드는 대신, 구조물에서 생겨난 반복적 현상을 왜곡하고, 주어진 패턴에 저항”하겠다고 다짐한다. 이에 해당하는 작품이 오늘의 초연작 <진동과 저항>(2024)이다. ‘진동’과 ‘저항’은 ‘반복’과 ‘변화’에 대입하여 이해할 수 있다. 진동은 반복되지만 또 다른 곳으로의 도약을 내포한다. 저항은 정해진 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바순, 호른, 트럼펫, 트롬본, 튜바는 다양한 연주기법을 구사하고 특정한 화성 패턴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만들어진 패턴으로부터 비껴가려는 저항의 시도가 거듭 등장한다. 이윽고 익숙해진 저항은 또 다른 음향적 저항을 만난다. 이른바 ‘저항의 변증법’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오늘 작곡발표회에서 연주되는 모든 곡들이 궁극적으로 정세훈이 지향하는 ‘예술가상의 구축’으로 이어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세훈에게 예술가란 모름지기 세계가 만들어놓은 힘에 저항해야 한다. 익숙한 것에 안주하는 대신 왜곡해야 한다. 변화의 역동성에 능동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무한’이 주는 아름다움이자, ‘자유’를 향한 몸짓이기 때문이다.

원유선

이화여자대학교 작곡과와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음악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디지털 세계가 아날로그 세계와 맞물리며 나타나는 새로운 음악적 상상력에 주목하며, 음악에 도래한 뉴노멀의 양상을 계속해서 예의주시하고 있다. 단독 저서로 『뉴노멀의 음악: 디지털 컨버전스 음악으로 미래를 듣다』(2021)가, 책임편집서로 『디지털 혁명과 음악: 유튜브, 매시업, 그리고 인공지능의 미학』(2021)이, 공저로 『음악에서의 AI와 포스트휴머니즘 미학』(2022) 등이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경희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가천대학교에서 강의하며 (사)음악미학연구회 편집위원장, 『한국 창작음악-비평과 해석 사이』 시리즈의 책임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