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눈의 소녀–만티코어
Synopsis
만티코어는 강한 존재를 유혹하여 함께 파멸하려는 괴물이다. 상처입은 소녀 엘리사의 공허를 입고, 영웅 테오필로스라는 파멸의 표본을 찾아내어, 영원한 허무 속으로 함께 가라앉는다.
ACT I. 거짓된 낙원과 깨진 항아리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으로 멸망 직전의 티레 왕국. 왕 아제밀쿠스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신을 닮은 좀도둑 에슈문과 알비노 여인 아나트를 대역으로 세우고 도주한다. 가짜 왕과 왕비가 된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친딸을 제물로 바치는 연극을 꾸미지만, 아나트의 공포와 이기심으로 아기에게 치사량에 가까운 독초를 먹이고 만다. 전쟁의 광기 속에서 몰렉의 축복주라는 독주를 마신 티레 군중과 그리스 군대가 서로를 도륙하는 사이, 살아남은 아나트는 장애를 얻은 딸을 데리고 숨어 살아간다. 세월이 흘러, 다락방에 유폐된 엘리사는 창밖의 세상을 동경하며 시들어간다. 어머니 아나트는 “약해서 나갈 수 없는 너는 원래 침대를 가장 좋아한다”며 끊임없이 딸을 세뇌한다. 자신의 부모, 티레의 백성들, 그리스 군대까지 모두가 생존과 탐욕을 위해 서로를 죽이는 똑같은 본질임을 깨달은 엘리사. 그녀의 깊은 절망과 공허의 틈새로 고대의 존재 만티코어가 스며든다. 엘리사는 자신의 육신을 만티코어에게 내어주고, 잿빛 눈의 소녀 리제로 다시 태어난다.
ACT II. 부서진 영웅과 잿빛 눈의 소녀
먼 미래. 소년 테오의 삶은 어머니 애그니스의 광기로 산산조각 났다. 전남편에 대한 집착으로 테오를 학대하고, 배다른 어린 동생들을 살해한 뒤 테오의 눈앞에서 자살한 어머니. 트라우마로 자아를 상실한 테오는 국가 기관에 의해 초능력 영웅 ‘테오필로스’로 개조된다. 평생을 인류를 위해 헌신하고 부당한 명령에도 무조건 순종하며 희생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대중의 조롱과 처참한 배신뿐이었다. 지구인들에게 쫓겨 시공간을 뚫고 중세의 티레 마을로 추락한 테오필로스. 그는 그곳에서 수천 년간 자신을 찾아다녀 온 잿빛 눈의 소녀 리제를 마주한다. 마을 사람들이 또다시 탐욕의 이빨을 드러내자, 리제는 본색을 드러내 그들을 도륙하며 테오를 도발한다. 정신이 붕괴되며 살육 괴물이 되어 폭주하는 테오. 마지막 힘을 짜내 만티코어의 목을 조르지만, 만티코어는 오히려 따스하게 그의 뺨을 어루만진다. 가장 뜨거운 분노와 가장 차가운 허무가 맞닿은 순간, 두 존재는 서로의 파편을 껴안고 영원한 안식 속으로 침잠한다.
Playwright's Note
제대로 살기 위해 자꾸만 죽고 죽이는 인간들의 끝없는 허기. 그리고, 제대로 죽기 위해 자꾸만 살고 살리고 죽이는 만티코어의 끝없는 허기. 이 모든 허기들에 종말을 고할 순간은 언제일까?
음악극 '만티코어'는 신화적 상상력과 인간 심연의 어두운 풍경을 결합한 잔혹 동화이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인간의 이기심, 타인의 희생 위에 세워진 거짓된 평화, 그리고 영웅이라 불리며 착취당하는 한 남자의 비극을 통해 우리는 묻게 된다. 과연 우리를 잠식하는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진짜 악은 무엇인가? 죽음을 향한 소망은 무엇인가? 삶을 향한 투쟁과 고통은 무엇인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진정한 끝은 무엇인가?
잿빛 눈동자 뒤에 숨은 만티코어의 황금빛 눈동자는 단순한 맹수의 눈이 아닌, 우리 내면의 뒤틀린 욕망을 비추는 가장 투명한 거울이다. 이 작품은 그 거울 앞에 선 당신에게 건네는 서늘한 질문이자, 파멸을 통해 완성되는 역설적인 위로이다.
Program Note
<잿빛눈의 소녀-만티코어>는 친절한 작품이 아니다. 전체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배려가 없으며, 오히려 작품은 내용의 정확한 전달을 방해한다. 많은 양의 대사들이 중첩되고, 줄거리의 순서도 겹쳐있다. 들리는 것은 문장이지만, 기억나는 것은 단어들, 혹은 이미지들이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기억할때, 우리의 과거를 기억할때, 강렬한 기억을 더듬을때, 기억은 시간순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기억은 뒤죽박죽이며, 논리도 없이 조각조각이다.
음악은 어떤 것일까? 예술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논리적인 조서가 아니며, 어떤 미적인 의도로 임의대로 조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미적’이라 함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작품은 강렬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를 헤집어야 하고, 무서워야 한다. 만티코어는 무서운 작품일까? 잔인하고 끔찍한 사건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억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어떻게든 인간의 동일성이 존재한다는 것이 어쩌면 조금은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까?
Working Note
작곡 노트
만티코어는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의 이중성에 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팜므파탈, 에로스와 힘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간의 복잡한 심리와 본성은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지지 않고, 명확하게 정의되기를 회피한다. 인간의 내면에는 다층적이고 불명확한 경험, 기억, 의지가 섞여있다. 인간은 시간적, 언어적 논리에 따라 나타나지 않는다.
이 극은 시간적 순서를 따르고 있지만, 등장 인물의 내면은 시간적 순서에 의해 서술되지 않는다. 음악은 의식의 흐름으로 등장인물의 내면을 따라간다. 기억은 알수 없는 곳에서 튀어나와 현재와 섞이고, 새로운 현재는 계속해서 잊었던 기억을 불러낸다. 혼란스럽고 모호한 이미지는 스스로에게로부터 탈출하고 깨어나기를 원하며, 드라마틱한 힘과 충격을 갈구한다.